원형(原形)으로 수렴되는 반복되는 원형(原形) 2023년 임지현 개인전에 부쳐
글. 김인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디렉터)
문법 용어인 ‘어휘소(語彙素, lexeme)’는 활용 이전에 존재하는 관념적 단어, 즉 최소한의 의미 단위를 뜻한다. 특정 단어를 문장 속에서 기능하게 하려면 단수형, 복수형, 과거, 현재형, 미래형 등 그 단어의 모양새에 변화를 주어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작동케 해야한다. 그래서 ‘어휘소’는 실제 현상에 앞선 인식체계에 존재하는 단어를 칭한다. 이 관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를 구체성을 가지고 작동케 하려면 활용형으로서 특정 상황을 서술하는 문장 안에 위치시켜야 한다. 그래야 문장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임지현 작가의 2023년 5월 17일부터 6월 17일까지 전시 공간 브와뜨(boîte)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목 <렉심>은 ‘어휘소’라는 전문적이면서도 사뭇 생소한 한글을 번역한 영어 단어 lexeme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마치 그 어떤 의미도 없는 단어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이 전시제목은 임지현 작가의 작업에서 이미지의 요소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유추할 수 있는 유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렉심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로서 혹은 그 용도로서의 추상성은 임지현 작가의 작업과 닮아있다. 즉 가장 기본이 되는 이미지의 원형(原形, the original form)을 어휘소로 두고 이들을 변주하며 의미를 생산하고 있다. 특정 화면으로 수렴되기 위한 수많은 용례를 시도하는 수많은 선과 여백, 색-물감의 집합은 또 다른 형태의 원형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작가가 흰색 화면 위에 점을 찍는 일은 어떤 맥락을 형성해낼 수 있을까. 화면에 찍히는 점은 그 자체로서는 원형 이상의 의미가 없다. 행위에 의해서 만들어진 점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시각예술가로서의 관점을 훈련하고 실천해온 이가, 이 행위를 하는 당위성을 명료히 하며 실행코자 하는 의지가 형성된 그 순간, 어떠한 완성형을 향하고 있는지를 인식해가며 기어이 실행을 진행하는 등이 짜임새 있는 관계를 맺고 나서야 비로소 점이라는 원형이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고 완성된 이미지로서의 결말이 맺어진다. 임지현의 화면 속에서의 무수한 점과 선, 방사형 단위의 형태들은 캔버스 표면마다 존재하지만 저마다 미묘하게 다른 위치를 점유하며 서로의 이미지를 구분한다. 그래서 임지현의 그림 속의 기본이 되는 요소인 점과 그가 이를 다루는 행위는 하나의 ‘원형’이다. 즉 ‘어휘소’이다. ‘렉심(lexeme)’이다.
원형(原形, the original form)은 반복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형태와 움직임은 반복적이다. 가령, 나의 한발을 내딛는 행위는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만, 이를 반복했을 때는 운동을 목적으로, 출근을 목적으로, 쇼핑을 목적으로 하는 등등 의미있는 행위로 확장된다. 모래알이 수없이 모여서 백사장을 형성하듯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만들어진 것은 원형 자체가 아닌 이들의 반복에 의하여 특정 기능과 존재의미가 형성된다. 임지현의 그림 역시 이미지의 시작점인 원형의 반복이다. 임지현은 회화 화면을 완성해나가는데 있어서 점, 선, 원, 혹은 방사형의 도형 등 몇 가지 요소를 반복한다. 원형으로서 존재했던 ‘점’은 검은 색 혹은 붉은 색 등의 단색의 무수한 반복된 행위의 흔적으로서 남겨진다. 좀 더 화면으로 다가서서 이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둥근 여백 주위로 채워진 물감의 색, 흐름, 농도, 쌓아올린 층 등 모든 것은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캔버스 위에서 진행된 반복적 행위는 새로운 이미지로서 드러났다. 원형이 반복되는 과정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으로 만들어진 화면은 노동의 양을 감각하게 하며,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포함한다. 그리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동은 원형적 의미를 획득하기 위한 실천으로서 전환된다. 동시에 색채와 형상은 작가 개인이 경험한 감각을 내포한다. 화면에는 어휘소를 시작으로 맥락을 갖추게 된 모종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렇게 ‘원형(原形, the original form)’은 반복을 통해 다시 ‘원본성(originality)’을 가진 ‘원형(原形, the original form)’을 획득하고 있었다.
임지현의 초기작업은 드물게 보이는 몇 점의 단색 색채 회화를 제외하고는 연필, 무채색 펜, 물감, 오일 등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회색톤의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 작업으로서 2006년도 작품인 <그 시절의 끝 La fin des années, ink on board, 50x65cm>을 소개하는데, 이 작업의 주를 이루고 있는 붉은색 잉크가 만들어내는 혈액의 흔적 혹은 고기 덩어리같은 이미지는 작가가 회색에 매료되기 전, 점의 집합으로 조성된 밀도로써 색 톤의 변화를 꾀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초기 작품인 <아라크네 Arachne, ink on board, 50x50cm, 2008>는 무수한 흑백의 점으로 제작된 작업이다. 이는 향후 회색톤의 다채로움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작업성향의 전조로 보인다. 또한 작품의 제목을 ‘아라크네’로 한 것은 시사적이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다. 신화에 따르면, 베짜기에 전무 후무한 기술을 가진 여성이지만 그가 가진 재주에 대한 오만함으로 신을 분노하게 한다. 그 벌로 평생 몸에서 실을 자아내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된 거미가 되었다. 이 시기의 임지현은 반복적인 형태를 손끝에서 자아내고 이를 화면 안에서 조형해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평생 실로 만든 집을 짓는 아라크네의 운명과 다르지 않음을 상상했을 것이며, 작가로서의 태도를 형성한 시기임을 엿볼 수 있다. 즉 작가는 이 신화에서 베를 짜는 ‘아라크네’와 실로 집을 짓는 ‘거미’는 창의적 반복과 본능으로서의 반복적 행위 간의 차이가 존재함을 인식했음이 틀림없다. 섬세한 선과 점을 반복한 이미지는 종종 구체적인 사실성으로 향하지 않더라도 화면의 여백과 분리된 구체적이고 특정적인 형상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점차 색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초기에 드러났던 인물의 형상이나 풍경 이미지가 차츰 추상화된 패턴으로 변해가면서 화면을 가득 채워나가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임지현은 최근 몇 년간 둥근 형태의 여백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행위의 시작은 아마 종종 그림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로부터라 짐작할 수 있다. 우연히 임지현의 숲속 풍경을 본 적이 있다(<사각의 숲 Blind Spot Forest>, oil on canvas, 130.3x160cm, 2015). 그 검고 깊은 풍경 속에는 뚫린 듯 동그랗고 하얀 눈을 가진 털복숭이 캐릭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눈은 원형(circle)의 흰 여백이다. 검은 선이 전체 화면을 뒤덮은 장면 속에서 번뜩이며 바라보고 있는 이 둥글고 하얀 눈은 묘사된 눈동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섬뜩한, 그러나 호기심으로 가득해 보이는 시선을 느끼게 했으며 (아마도 복슬거리는 외형에서 오는 귀여움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존재에 대한 잔상이 남겨졌다. 이번 전시를 위하여 임지현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살펴보던 중 온전히 캐릭터의 묘사에 집중하여 완성한 작품 <시선 Trying to See,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화, 91x60.6cm, 2015>을 발견하였고, 오래된 잔상을 눈앞에 소환한 듯한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임지현은 작년부터 도자기 매체로 털복숭이 혹은 둥근 구형태의 캐릭터들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캐릭터의 얼굴 부분을 지시하기 위해 눈 부분에 둥근 구멍을 뚫어보았다. 구멍을 통하여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감각은 회화가 가질 수 없었던 공간에 대한 개념을 환기시켰다. 그 감각을 다시 회화에 적용시키기 위해 직접 캔버스를 뚫어보는 등의 시도를 해보았지만 구멍의 형태와 함께 조응하는, 평면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리적 내부 공간과의 조응하는 감각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지금까지 색상을 비우며 여백 만들어내기를 해 온 회화 작업에서 평면의 성질을 더욱 고찰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겠다. 여백은 이미지가 채워지지 않는 비워진 곳이기도 했지만, 물감의 지지체로서의 캔버스가 가진 물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환영적 성격으로부터 보다 현상적 감각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여백의 원은 임지현의 회화 안에서는 이미지의 일부로서 작동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임지현 작가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흑백 회화에 몰두했다. 검은 톤의 화면은 점차 회색의 다양함을 드러냈고, 지금까지 번지기, 흘리기, 문지르기 등 그 다양한 제작 기법을 통해 보다 과감한 화면을 시도하고 있다. 회색에 매료되었던 이 시기에 작가는 화면 위에서 서로 다른 밀도를 만들어낸 결과물이 마치 서로 다른 색감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동양화에서의 농담 조절의 개념과 비슷한 태도로 이미지를 다루었다. 즉 무채색의 다양한 톤을 만들어내면서 여러 종류의 색상을 대신해 왔던 것이다. 특히 2018년 70점으로 이루어진 <70개의 회색 달 70 GREY MOONS, oil on canvas, 19x19cm each, 2018> 시리즈는 실제 단시간에 변화 무쌍하게 구름 속에서 변화하는 달 풍경 이미지를 잡아내어 화면으로 옮긴 작업이다. 회색 톤만을 사용하며 완성한 이 시리즈는 회색으로 발산할 수 있는 톤의 단계를 효과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으며, 2015년도에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단색으로서의 검정에 대한 감각을 회색으로서의 정체성으로 확장해간 작업이기도 하다. 이는 작가가 2015년에 제작한 책 형식의 조각 작업인 85권의 책으로 구성된 <Black-Grey-White Sculpture, offset print, silk screen, paper, bond, 27x21x3cm, each>를 포함한 몇 점의 입체 작업에서도 이러한 본격적인 연구를 볼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원형((原形, the original form)의 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전시 작품들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반복’은 임지현 작가가 원형으로부터 변주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이었다. 반복된 점은 모종의 얼룩과 같은 추상 형태를 만들면서 덩어리감과 밀도감, 상상적 형상을 만들어냈다. 오일스틱 또한 임지현의 화면 위에서 재료의 물성을 부각시키는 중요한 재료가 되고 있는데, 오일물감이 주는 색의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훨씬 짙은 농도의 표면 물질감을 쌓을 수 있었으며 특히 흑백 작업에서 색채화로 변화하는 단계에 사용하기 시작해 오일물감과 함께, 때로는 온전한 재료로서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다양한 컬러를 사용하고 있는, 그리고 과감하게 표현되는 터치감을 적극 드러내는 2021년부터 현재까지의 신작 작업들을 포함 한 이번 전시는 임지현 작가가 초기 작업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화면을 관통해 온 몇 가지 요소와 함께 더불어 여백의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앞서 언급하였듯 임지현의 ‘여백’은 이미지를 채우고 남은 배경이었던 것이 점차 색과 형태의 부분으로서 이미지 자체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어휘소가 중심 의미를 유지하며 단어의 근간을 이루듯, 임지현의 어휘소가 다양한 이미지 속에서도 그 추상성을 향해 수렴해 나가는 맥락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원형에서 출발하여 반복의 행위를 통한 원본성을 획득해 나가고 있는 임지현의 작업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