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1일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작업실로 가려던 나는 아파트 정원에서 20여분간 사진을 찍고는 다시 집으로 올라가 눈 풍경을 한참 쳐다보고 나서야 다시 집을 나섰다. 

왜 유독 그날 그 풍경들이 눈에 밟혔는지, 그 해 여름 이사해 1년을 채 살지 않았던 그 단지의 작은 정원이 좋아 눈 풍경이 더 깊이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날 바로 사진을 하나 골라 그리기 시작해 몇일만에 빠르게 완성하고 두번째를 그리다 멈추고는 2024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여러 점을 다시 이어 그렸다. 

지금 이 그림들의 시간을 상기하다 보니 눈 그리기를 멈췄던 1년 반이 떠오르고 나는 그 시간을 눈으로 – 흰 물감으로 – 덮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한다. 

오일스틱, 연필 등을 사용해 두 점을 그린 후 먹으로 한 점, 이후 동양화 붓을 새로 구입해 먹으로 다시 한 점 이렇게 소품 4점 이후 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면서, 왜 사람들은 눈 풍경에 이끌리는지, 나는 왜인지 계속 생각했다. 

작업 중 그림을 떨어져서 보다가, 누구나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있을텐데 그것을 어느 동안 덮어주는 아름다움이 눈 같다고 생각했다. 

눈은 언젠가 녹아버리지만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다고. 

2024년 여름 눈 그림을 다시 그리며 PAAI가 시작되었고 다소 자연스럽게 산수화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시선은 땅에 낮게 자라있는 눈 덮인 풀에서 시작해 눈이 덮이고 있는 나무의 윗부분을 지나 눈이 가득 쌓인 소나무의 잎으로 옮겨가며 근경을 포착해왔다. 

이는 선과 점을 오랜동안 주된 요소로 그려온 까닭에서 눈이 쌓인 나무와 풀에서 선이 – 선처럼 보이는 나무가지와 풀들이 – 도드라져 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검은 선과 먹물 위 흰 물감으로 눈을 쌓은 후, 검은 색으로만 그려놓았던 캔버스를 흰색 물감으로 조금씩 덮기 시작했고 그렇게 새로운 추상 작업이 생겨났다. 

실경을 참조하여 그린 눈 그림은 다시 추상으로 순환되어 점점이 쌓이던 흰 눈은 흰 색의 엷은 막이 되어 검정 위에 덮이고 스며든다. 

숨기고 드러내며, 빛과 어둠의 조화를 찾는다.  

물질 연습 작가노트 2025